세운상가|도로 위에 도시를 얹은 메가스트럭처는 왜 두 번 좌절했나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건물군과 보행데크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도로와 보행데크를 서로 다른 높이에 배치한 세운상가의 구상을 보여줍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MEGASTRUCTURE OF SEOUL

도로 위에 도시를 얹은 세운상가, 왜 두 번 좌절했나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도심의 메가스트럭처를
구조·재료·시공의 시선으로 읽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청계천을 가로질러 약 1km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군이 있습니다. 세운상가입니다. 1967년 준공 당시 이 건물은 지상의 차도와 3층의 보행로를 완전히 분리하고, 그 위에 상가·주거·공공시설이 얹힌 하나의 "인공 도시"를 꿈꿨습니다.

이 구상은 준공 때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크게 좌절했습니다. 1970년대 8개 건설사가 각자 건물을 지으며 애초의 연속된 데크가 토막났고, 2024년에는 1,109억 원을 들여 복원한 공중보행교마저 철거가 확정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얹는다"는 구조적 발상이 어떻게 성립했고, 왜 두 번이나 현실에서 무너졌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내용 세운상가가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로 지어졌는지, 3층 데크가 구조적으로 도로 위를 어떻게 덮었는지, 왜 애초 계획대로 하나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2017년 재생사업이 무엇을 다시 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 그 보행교가 왜 다시 철거되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였나

서울 도심에 길게 놓인 세운상가 건물군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상가 건물군이 주변 시가지와 맞닿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선 부지 자체가 이미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소이탄 공습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폭 50m·길이 1,180m 구간의 건물을 강제 철거해 만든 소개공지(疏開空地)가 그 자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빈 띠 모양의 부지는 무허가 판자촌으로 채워졌다가,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개발 계획과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를 통해 세운상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김수근의 구상은 단순한 상가 건물이 아니라, 지상 1층은 차도·주차장으로, 3층에는 사람만 다니는 인공 데크를 놓아 보행자와 자동차를 완전히 분리한 "선형 메가스트럭처"였습니다. 점포 2천여 개와 주거 915세대를 수용하는 이 건물은 1971년 한강맨션이 들어서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첨단 주상복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위치 서울 종로구~중구, 종묘~퇴계로 약 1km 구간
설계 김수근 (실무 설계 윤승중 등)
준공 1967~1972년 (현대상가 1967년 7월 최초 준공)
구성 현대·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상가 등 8개 건물군 (2009년 현대상가 철거, 현재 7개 동)
주요 자재 시멘트 약 87만 부대, 철근 약 7천 톤, 목재 143만 사이
구조 철근콘크리트, 1층 차도 위 3층 인공 보행 데크
재생사업 2014~2017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2022~2023년 공중보행교 복원

2. 데크는 어떻게 도로 위를 덮었나 — 건폐율 100%의 구조

세운상가 보행데크와 그 아래 상가 공간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부 보행 공간과 지상 통행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정확한 구조 형식을 보여주는 도면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의 구조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건물 상층부 바닥판이 실제 대지 경계보다 넓게 뻗어 나와, 양옆 도로 위까지 그대로 덮고 있는 동이 존재합니다. 건축 법규상 대지면적 대비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건폐율)이 100%를 넘는 셈입니다. 이는 건물이 단순히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상공에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을 캔틸레버(한쪽만 지지된 채 뻗은 구조) 형태로 걸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캔틸레버 데크가 구조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은 위층 점포·주거의 하중뿐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얹으면서도 그 아래 도로 기능은 막지 않아야 하는 이중 조건을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구조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만 이 데크에는 애초 계획했던 유리 지붕과 옥상 정원이 끝내 시공되지 않아, 지금의 다소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으로 남았습니다.

3. 왜 "한 줄"이 되지 못했나 — 8개 건물군과 끊어진 데크

반복되는 상가와 상부 보행로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건물군 안에서 상가와 보행로가 반복되는 공간감을 표현했습니다. 각 동의 실제 연결 상태를 기록한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수근의 원래 구상은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하나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3층 보행 데크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공은 서로 다른 8개 건설사가 구간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설계자 윤승중은 훗날 "8개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결과 각 동의 3층 데크는 높이와 폭이 미세하게 어긋난 채 개별적으로 지어졌고,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이어졌다가 마른내길 구간에서 완전히 끊기는 등 연속성을 잃었습니다. 구조적으로 개별 건물은 문제없이 서 있었지만, 애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연속된 인공 지반"이라는 도시적 구조는 성립하지 못한 셈입니다. 시공 조직이 여러 주체로 쪼개지면 개별 구조물은 완성되어도 전체 시스템은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2017년, 데크를 다시 잇다

세운상가의 상부 보행로와 서울 도심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공중보행로에서는 지상의 길과 다른 높이에서 주변 시가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입주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해, 1987년 용산전자상가 조성과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거치며 쇠퇴가 깊어졌습니다. 1995년 서울시는 전면 철거·공원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고, 2008년 오세훈 시장 때 현대상가 동만 철거된 채 금융위기로 중단됐습니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전면 철거 대신 "보존형 개발"을 택하고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끊어졌던 3층 데크, 즉 공중보행교를 국제공모를 거쳐 다시 설계해 잇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 9월 세운상가 리모델링이 먼저 재개장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돼 2022~2023년 세운~청계~대림~인현~진양상가를 잇는 보행교가 완성됐습니다. 총사업비는 1,109억 원에 달했습니다.

5. 2024년, 다시 철거로 — 보행교는 왜 실패했나

상가 사이의 보행데크와 주변 건물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보행교를 평가할 때는 위쪽 통행뿐 아니라 아래쪽 거리의 빛과 보행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공된 지 2년 만인 2024년, 서울시는 이 공중보행교의 철거를 확정했습니다. 원인은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실제 이용 실적이었습니다. 설계 당시 하루 10만 5,440건의 통행이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그 11%인 1만 1,731건에 그쳤습니다. 철거가 결정된 삼풍상가~PJ호텔 구간은 예측치의 6.7%만 쓰였습니다.

여기에 데크 하층부가 햇빛을 가려 지상부가 어두워지고, 누수와 지상 보도 폭 축소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보행교 설치 이후 지상부 보행량은 설치 전보다 59%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멀쩡히 서 있는 다리가, 주변부 환경과 실제 이용 패턴을 계산에 넣지 않은 탓에 철거 대상이 된 것입니다. 남은 구간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상가군을 공원으로 바꾸는 사업과 맞물려 단계적으로 철거될 예정입니다.

1967년
현대상가 최초 준공
1995년
전면 철거·공원화 발표
2014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시작
2022~23년
공중보행교 완성
2024년
보행교 철거 확정

세운상가와 공중보행교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자주 묻는 질문

Q1. 세운상가는 왜 건폐율 100%를 넘는 구조가 가능했나요?

건물 상층부 바닥판을 도로 위까지 캔틸레버로 내밀어 지은 특수한 시기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준의 일반적인 건축 법규로는 허가되기 어려운 형태로, 1960년대 서울의 특수한 개발 방식이 남긴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Q2. 나카긴 캡슐타워와 비슷한 시대의 건물인가요?

네, 둘 다 1960년대 후반 "메가스트럭처"라는 세계적 건축 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나카긴이 교체 가능한 캡슐 개념이었다면, 세운상가는 도로 위에 연속된 인공 지반(데크)을 놓아 도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처럼 엮으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Q3. 그러면 세운상가 건물 자체도 철거되나요?

2024년 철거가 확정된 것은 공중보행교(데크 연결부)이며, 세운상가 건물 자체의 존치·철거 여부는 별도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구역별로 다르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신 진행 상황은 서울시 발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건물군과 보행데크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도로와 보행데크를 서로 다른 높이에 배치한 세운상가의 구상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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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STRUCTURE OF SEOUL

도로 위에 도시를 얹은 세운상가, 왜 두 번 좌절했나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도심의 메가스트럭처를
구조·재료·시공의 시선으로 읽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청계천을 가로질러 약 1km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군이 있습니다. 세운상가입니다. 1967년 준공 당시 이 건물은 지상의 차도와 3층의 보행로를 완전히 분리하고, 그 위에 상가·주거·공공시설이 얹힌 하나의 "인공 도시"를 꿈꿨습니다.

이 구상은 준공 때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크게 좌절했습니다. 1970년대 8개 건설사가 각자 건물을 지으며 애초의 연속된 데크가 토막났고, 2024년에는 1,109억 원을 들여 복원한 공중보행교마저 철거가 확정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얹는다"는 구조적 발상이 어떻게 성립했고, 왜 두 번이나 현실에서 무너졌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내용 세운상가가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로 지어졌는지, 3층 데크가 구조적으로 도로 위를 어떻게 덮었는지, 왜 애초 계획대로 하나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2017년 재생사업이 무엇을 다시 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 그 보행교가 왜 다시 철거되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였나

서울 도심에 길게 놓인 세운상가 건물군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상가 건물군이 주변 시가지와 맞닿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선 부지 자체가 이미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소이탄 공습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폭 50m·길이 1,180m 구간의 건물을 강제 철거해 만든 소개공지(疏開空地)가 그 자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빈 띠 모양의 부지는 무허가 판자촌으로 채워졌다가,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개발 계획과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를 통해 세운상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김수근의 구상은 단순한 상가 건물이 아니라, 지상 1층은 차도·주차장으로, 3층에는 사람만 다니는 인공 데크를 놓아 보행자와 자동차를 완전히 분리한 "선형 메가스트럭처"였습니다. 점포 2천여 개와 주거 915세대를 수용하는 이 건물은 1971년 한강맨션이 들어서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첨단 주상복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위치 서울 종로구~중구, 종묘~퇴계로 약 1km 구간
설계 김수근 (실무 설계 윤승중 등)
준공 1967~1972년 (현대상가 1967년 7월 최초 준공)
구성 현대·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상가 등 8개 건물군 (2009년 현대상가 철거, 현재 7개 동)
주요 자재 시멘트 약 87만 부대, 철근 약 7천 톤, 목재 143만 사이
구조 철근콘크리트, 1층 차도 위 3층 인공 보행 데크
재생사업 2014~2017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2022~2023년 공중보행교 복원

2. 데크는 어떻게 도로 위를 덮었나 — 건폐율 100%의 구조

세운상가 보행데크와 그 아래 상가 공간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부 보행 공간과 지상 통행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정확한 구조 형식을 보여주는 도면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의 구조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건물 상층부 바닥판이 실제 대지 경계보다 넓게 뻗어 나와, 양옆 도로 위까지 그대로 덮고 있는 동이 존재합니다. 건축 법규상 대지면적 대비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건폐율)이 100%를 넘는 셈입니다. 이는 건물이 단순히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상공에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을 캔틸레버(한쪽만 지지된 채 뻗은 구조) 형태로 걸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캔틸레버 데크가 구조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은 위층 점포·주거의 하중뿐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얹으면서도 그 아래 도로 기능은 막지 않아야 하는 이중 조건을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구조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만 이 데크에는 애초 계획했던 유리 지붕과 옥상 정원이 끝내 시공되지 않아, 지금의 다소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으로 남았습니다.

3. 왜 "한 줄"이 되지 못했나 — 8개 건물군과 끊어진 데크

반복되는 상가와 상부 보행로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건물군 안에서 상가와 보행로가 반복되는 공간감을 표현했습니다. 각 동의 실제 연결 상태를 기록한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수근의 원래 구상은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하나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3층 보행 데크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공은 서로 다른 8개 건설사가 구간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설계자 윤승중은 훗날 "8개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결과 각 동의 3층 데크는 높이와 폭이 미세하게 어긋난 채 개별적으로 지어졌고,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이어졌다가 마른내길 구간에서 완전히 끊기는 등 연속성을 잃었습니다. 구조적으로 개별 건물은 문제없이 서 있었지만, 애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연속된 인공 지반"이라는 도시적 구조는 성립하지 못한 셈입니다. 시공 조직이 여러 주체로 쪼개지면 개별 구조물은 완성되어도 전체 시스템은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2017년, 데크를 다시 잇다

세운상가의 상부 보행로와 서울 도심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공중보행로에서는 지상의 길과 다른 높이에서 주변 시가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입주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해, 1987년 용산전자상가 조성과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거치며 쇠퇴가 깊어졌습니다. 1995년 서울시는 전면 철거·공원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고, 2008년 오세훈 시장 때 현대상가 동만 철거된 채 금융위기로 중단됐습니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전면 철거 대신 "보존형 개발"을 택하고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끊어졌던 3층 데크, 즉 공중보행교를 국제공모를 거쳐 다시 설계해 잇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 9월 세운상가 리모델링이 먼저 재개장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돼 2022~2023년 세운~청계~대림~인현~진양상가를 잇는 보행교가 완성됐습니다. 총사업비는 1,109억 원에 달했습니다.

5. 2024년, 다시 철거로 — 보행교는 왜 실패했나

상가 사이의 보행데크와 주변 건물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보행교를 평가할 때는 위쪽 통행뿐 아니라 아래쪽 거리의 빛과 보행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공된 지 2년 만인 2024년, 서울시는 이 공중보행교의 철거를 확정했습니다. 원인은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실제 이용 실적이었습니다. 설계 당시 하루 10만 5,440건의 통행이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그 11%인 1만 1,731건에 그쳤습니다. 철거가 결정된 삼풍상가~PJ호텔 구간은 예측치의 6.7%만 쓰였습니다.

여기에 데크 하층부가 햇빛을 가려 지상부가 어두워지고, 누수와 지상 보도 폭 축소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보행교 설치 이후 지상부 보행량은 설치 전보다 59%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멀쩡히 서 있는 다리가, 주변부 환경과 실제 이용 패턴을 계산에 넣지 않은 탓에 철거 대상이 된 것입니다. 남은 구간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상가군을 공원으로 바꾸는 사업과 맞물려 단계적으로 철거될 예정입니다.

1967년
현대상가 최초 준공
1995년
전면 철거·공원화 발표
2014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시작
2022~23년
공중보행교 완성
2024년
보행교 철거 확정

세운상가와 공중보행교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세운상가는 왜 건폐율 100%를 넘는 구조가 가능했나요?

건물 상층부 바닥판을 도로 위까지 캔틸레버로 내밀어 지은 특수한 시기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준의 일반적인 건축 법규로는 허가되기 어려운 형태로, 1960년대 서울의 특수한 개발 방식이 남긴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Q2. 나카긴 캡슐타워와 비슷한 시대의 건물인가요?

네, 둘 다 1960년대 후반 "메가스트럭처"라는 세계적 건축 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나카긴이 교체 가능한 캡슐 개념이었다면, 세운상가는 도로 위에 연속된 인공 지반(데크)을 놓아 도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처럼 엮으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Q3. 그러면 세운상가 건물 자체도 철거되나요?

2024년 철거가 확정된 것은 공중보행교(데크 연결부)이며, 세운상가 건물 자체의 존치·철거 여부는 별도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구역별로 다르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신 진행 상황은 서울시 발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건물군과 보행데크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도로와 보행데크를 서로 다른 높이에 배치한 세운상가의 구상을 보여줍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MEGASTRUCTURE OF SEOUL

도로 위에 도시를 얹은 세운상가, 왜 두 번 좌절했나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도심의 메가스트럭처를
구조·재료·시공의 시선으로 읽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청계천을 가로질러 약 1km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군이 있습니다. 세운상가입니다. 1967년 준공 당시 이 건물은 지상의 차도와 3층의 보행로를 완전히 분리하고, 그 위에 상가·주거·공공시설이 얹힌 하나의 "인공 도시"를 꿈꿨습니다.

이 구상은 준공 때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크게 좌절했습니다. 1970년대 8개 건설사가 각자 건물을 지으며 애초의 연속된 데크가 토막났고, 2024년에는 1,109억 원을 들여 복원한 공중보행교마저 철거가 확정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얹는다"는 구조적 발상이 어떻게 성립했고, 왜 두 번이나 현실에서 무너졌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내용 세운상가가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로 지어졌는지, 3층 데크가 구조적으로 도로 위를 어떻게 덮었는지, 왜 애초 계획대로 하나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2017년 재생사업이 무엇을 다시 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 그 보행교가 왜 다시 철거되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였나

서울 도심에 길게 놓인 세운상가 건물군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상가 건물군이 주변 시가지와 맞닿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선 부지 자체가 이미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소이탄 공습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폭 50m·길이 1,180m 구간의 건물을 강제 철거해 만든 소개공지(疏開空地)가 그 자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빈 띠 모양의 부지는 무허가 판자촌으로 채워졌다가,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개발 계획과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를 통해 세운상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김수근의 구상은 단순한 상가 건물이 아니라, 지상 1층은 차도·주차장으로, 3층에는 사람만 다니는 인공 데크를 놓아 보행자와 자동차를 완전히 분리한 "선형 메가스트럭처"였습니다. 점포 2천여 개와 주거 915세대를 수용하는 이 건물은 1971년 한강맨션이 들어서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첨단 주상복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위치 서울 종로구~중구, 종묘~퇴계로 약 1km 구간
설계 김수근 (실무 설계 윤승중 등)
준공 1967~1972년 (현대상가 1967년 7월 최초 준공)
구성 현대·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상가 등 8개 건물군 (2009년 현대상가 철거, 현재 7개 동)
주요 자재 시멘트 약 87만 부대, 철근 약 7천 톤, 목재 143만 사이
구조 철근콘크리트, 1층 차도 위 3층 인공 보행 데크
재생사업 2014~2017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2022~2023년 공중보행교 복원

2. 데크는 어떻게 도로 위를 덮었나 — 건폐율 100%의 구조

세운상가 보행데크와 그 아래 상가 공간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부 보행 공간과 지상 통행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정확한 구조 형식을 보여주는 도면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의 구조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건물 상층부 바닥판이 실제 대지 경계보다 넓게 뻗어 나와, 양옆 도로 위까지 그대로 덮고 있는 동이 존재합니다. 건축 법규상 대지면적 대비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건폐율)이 100%를 넘는 셈입니다. 이는 건물이 단순히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상공에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을 캔틸레버(한쪽만 지지된 채 뻗은 구조) 형태로 걸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캔틸레버 데크가 구조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은 위층 점포·주거의 하중뿐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얹으면서도 그 아래 도로 기능은 막지 않아야 하는 이중 조건을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구조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만 이 데크에는 애초 계획했던 유리 지붕과 옥상 정원이 끝내 시공되지 않아, 지금의 다소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으로 남았습니다.

3. 왜 "한 줄"이 되지 못했나 — 8개 건물군과 끊어진 데크

반복되는 상가와 상부 보행로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건물군 안에서 상가와 보행로가 반복되는 공간감을 표현했습니다. 각 동의 실제 연결 상태를 기록한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수근의 원래 구상은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하나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3층 보행 데크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공은 서로 다른 8개 건설사가 구간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설계자 윤승중은 훗날 "8개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결과 각 동의 3층 데크는 높이와 폭이 미세하게 어긋난 채 개별적으로 지어졌고,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이어졌다가 마른내길 구간에서 완전히 끊기는 등 연속성을 잃었습니다. 구조적으로 개별 건물은 문제없이 서 있었지만, 애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연속된 인공 지반"이라는 도시적 구조는 성립하지 못한 셈입니다. 시공 조직이 여러 주체로 쪼개지면 개별 구조물은 완성되어도 전체 시스템은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2017년, 데크를 다시 잇다

세운상가의 상부 보행로와 서울 도심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공중보행로에서는 지상의 길과 다른 높이에서 주변 시가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입주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해, 1987년 용산전자상가 조성과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거치며 쇠퇴가 깊어졌습니다. 1995년 서울시는 전면 철거·공원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고, 2008년 오세훈 시장 때 현대상가 동만 철거된 채 금융위기로 중단됐습니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전면 철거 대신 "보존형 개발"을 택하고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끊어졌던 3층 데크, 즉 공중보행교를 국제공모를 거쳐 다시 설계해 잇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 9월 세운상가 리모델링이 먼저 재개장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돼 2022~2023년 세운~청계~대림~인현~진양상가를 잇는 보행교가 완성됐습니다. 총사업비는 1,109억 원에 달했습니다.

5. 2024년, 다시 철거로 — 보행교는 왜 실패했나

상가 사이의 보행데크와 주변 건물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보행교를 평가할 때는 위쪽 통행뿐 아니라 아래쪽 거리의 빛과 보행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공된 지 2년 만인 2024년, 서울시는 이 공중보행교의 철거를 확정했습니다. 원인은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실제 이용 실적이었습니다. 설계 당시 하루 10만 5,440건의 통행이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그 11%인 1만 1,731건에 그쳤습니다. 철거가 결정된 삼풍상가~PJ호텔 구간은 예측치의 6.7%만 쓰였습니다.

여기에 데크 하층부가 햇빛을 가려 지상부가 어두워지고, 누수와 지상 보도 폭 축소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보행교 설치 이후 지상부 보행량은 설치 전보다 59%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멀쩡히 서 있는 다리가, 주변부 환경과 실제 이용 패턴을 계산에 넣지 않은 탓에 철거 대상이 된 것입니다. 남은 구간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상가군을 공원으로 바꾸는 사업과 맞물려 단계적으로 철거될 예정입니다.

1967년
현대상가 최초 준공
1995년
전면 철거·공원화 발표
2014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시작
2022~23년
공중보행교 완성
2024년
보행교 철거 확정

세운상가와 공중보행교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세운상가는 왜 건폐율 100%를 넘는 구조가 가능했나요?

건물 상층부 바닥판을 도로 위까지 캔틸레버로 내밀어 지은 특수한 시기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준의 일반적인 건축 법규로는 허가되기 어려운 형태로, 1960년대 서울의 특수한 개발 방식이 남긴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Q2. 나카긴 캡슐타워와 비슷한 시대의 건물인가요?

네, 둘 다 1960년대 후반 "메가스트럭처"라는 세계적 건축 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나카긴이 교체 가능한 캡슐 개념이었다면, 세운상가는 도로 위에 연속된 인공 지반(데크)을 놓아 도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처럼 엮으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Q3. 그러면 세운상가 건물 자체도 철거되나요?

2024년 철거가 확정된 것은 공중보행교(데크 연결부)이며, 세운상가 건물 자체의 존치·철거 여부는 별도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구역별로 다르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신 진행 상황은 서울시 발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세운상가 건물군과 공중보행교를 함께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가 건물과 연결 보행교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그림은 실제 현황을 기록한 사진이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세운상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건물군과 보행데크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도로와 보행데크를 서로 다른 높이에 배치한 세운상가의 구상을 보여줍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MEGASTRUCTURE OF SEOUL

도로 위에 도시를 얹은 세운상가, 왜 두 번 좌절했나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도심의 메가스트럭처를
구조·재료·시공의 시선으로 읽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청계천을 가로질러 약 1km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군이 있습니다. 세운상가입니다. 1967년 준공 당시 이 건물은 지상의 차도와 3층의 보행로를 완전히 분리하고, 그 위에 상가·주거·공공시설이 얹힌 하나의 "인공 도시"를 꿈꿨습니다.

이 구상은 준공 때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크게 좌절했습니다. 1970년대 8개 건설사가 각자 건물을 지으며 애초의 연속된 데크가 토막났고, 2024년에는 1,109억 원을 들여 복원한 공중보행교마저 철거가 확정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얹는다"는 구조적 발상이 어떻게 성립했고, 왜 두 번이나 현실에서 무너졌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내용 세운상가가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로 지어졌는지, 3층 데크가 구조적으로 도로 위를 어떻게 덮었는지, 왜 애초 계획대로 하나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2017년 재생사업이 무엇을 다시 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 그 보행교가 왜 다시 철거되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였나

서울 도심에 길게 놓인 세운상가 건물군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상가 건물군이 주변 시가지와 맞닿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선 부지 자체가 이미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소이탄 공습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폭 50m·길이 1,180m 구간의 건물을 강제 철거해 만든 소개공지(疏開空地)가 그 자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빈 띠 모양의 부지는 무허가 판자촌으로 채워졌다가,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개발 계획과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를 통해 세운상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김수근의 구상은 단순한 상가 건물이 아니라, 지상 1층은 차도·주차장으로, 3층에는 사람만 다니는 인공 데크를 놓아 보행자와 자동차를 완전히 분리한 "선형 메가스트럭처"였습니다. 점포 2천여 개와 주거 915세대를 수용하는 이 건물은 1971년 한강맨션이 들어서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첨단 주상복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위치 서울 종로구~중구, 종묘~퇴계로 약 1km 구간
설계 김수근 (실무 설계 윤승중 등)
준공 1967~1972년 (현대상가 1967년 7월 최초 준공)
구성 현대·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상가 등 8개 건물군 (2009년 현대상가 철거, 현재 7개 동)
주요 자재 시멘트 약 87만 부대, 철근 약 7천 톤, 목재 143만 사이
구조 철근콘크리트, 1층 차도 위 3층 인공 보행 데크
재생사업 2014~2017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2022~2023년 공중보행교 복원

2. 데크는 어떻게 도로 위를 덮었나 — 건폐율 100%의 구조

세운상가 보행데크와 그 아래 상가 공간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부 보행 공간과 지상 통행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정확한 구조 형식을 보여주는 도면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의 구조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건물 상층부 바닥판이 실제 대지 경계보다 넓게 뻗어 나와, 양옆 도로 위까지 그대로 덮고 있는 동이 존재합니다. 건축 법규상 대지면적 대비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건폐율)이 100%를 넘는 셈입니다. 이는 건물이 단순히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상공에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을 캔틸레버(한쪽만 지지된 채 뻗은 구조) 형태로 걸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캔틸레버 데크가 구조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은 위층 점포·주거의 하중뿐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얹으면서도 그 아래 도로 기능은 막지 않아야 하는 이중 조건을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구조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만 이 데크에는 애초 계획했던 유리 지붕과 옥상 정원이 끝내 시공되지 않아, 지금의 다소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으로 남았습니다.

3. 왜 "한 줄"이 되지 못했나 — 8개 건물군과 끊어진 데크

반복되는 상가와 상부 보행로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건물군 안에서 상가와 보행로가 반복되는 공간감을 표현했습니다. 각 동의 실제 연결 상태를 기록한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수근의 원래 구상은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하나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3층 보행 데크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공은 서로 다른 8개 건설사가 구간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설계자 윤승중은 훗날 "8개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결과 각 동의 3층 데크는 높이와 폭이 미세하게 어긋난 채 개별적으로 지어졌고,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이어졌다가 마른내길 구간에서 완전히 끊기는 등 연속성을 잃었습니다. 구조적으로 개별 건물은 문제없이 서 있었지만, 애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연속된 인공 지반"이라는 도시적 구조는 성립하지 못한 셈입니다. 시공 조직이 여러 주체로 쪼개지면 개별 구조물은 완성되어도 전체 시스템은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2017년, 데크를 다시 잇다

세운상가의 상부 보행로와 서울 도심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공중보행로에서는 지상의 길과 다른 높이에서 주변 시가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입주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해, 1987년 용산전자상가 조성과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거치며 쇠퇴가 깊어졌습니다. 1995년 서울시는 전면 철거·공원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고, 2008년 오세훈 시장 때 현대상가 동만 철거된 채 금융위기로 중단됐습니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전면 철거 대신 "보존형 개발"을 택하고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끊어졌던 3층 데크, 즉 공중보행교를 국제공모를 거쳐 다시 설계해 잇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 9월 세운상가 리모델링이 먼저 재개장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돼 2022~2023년 세운~청계~대림~인현~진양상가를 잇는 보행교가 완성됐습니다. 총사업비는 1,109억 원에 달했습니다.

5. 2024년, 다시 철거로 — 보행교는 왜 실패했나

상가 사이의 보행데크와 주변 건물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보행교를 평가할 때는 위쪽 통행뿐 아니라 아래쪽 거리의 빛과 보행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공된 지 2년 만인 2024년, 서울시는 이 공중보행교의 철거를 확정했습니다. 원인은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실제 이용 실적이었습니다. 설계 당시 하루 10만 5,440건의 통행이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그 11%인 1만 1,731건에 그쳤습니다. 철거가 결정된 삼풍상가~PJ호텔 구간은 예측치의 6.7%만 쓰였습니다.

여기에 데크 하층부가 햇빛을 가려 지상부가 어두워지고, 누수와 지상 보도 폭 축소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보행교 설치 이후 지상부 보행량은 설치 전보다 59%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멀쩡히 서 있는 다리가, 주변부 환경과 실제 이용 패턴을 계산에 넣지 않은 탓에 철거 대상이 된 것입니다. 남은 구간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상가군을 공원으로 바꾸는 사업과 맞물려 단계적으로 철거될 예정입니다.

1967년
현대상가 최초 준공
1995년
전면 철거·공원화 발표
2014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시작
2022~23년
공중보행교 완성
2024년
보행교 철거 확정

세운상가와 공중보행교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세운상가는 왜 건폐율 100%를 넘는 구조가 가능했나요?

건물 상층부 바닥판을 도로 위까지 캔틸레버로 내밀어 지은 특수한 시기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준의 일반적인 건축 법규로는 허가되기 어려운 형태로, 1960년대 서울의 특수한 개발 방식이 남긴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Q2. 나카긴 캡슐타워와 비슷한 시대의 건물인가요?

네, 둘 다 1960년대 후반 "메가스트럭처"라는 세계적 건축 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나카긴이 교체 가능한 캡슐 개념이었다면, 세운상가는 도로 위에 연속된 인공 지반(데크)을 놓아 도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처럼 엮으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Q3. 그러면 세운상가 건물 자체도 철거되나요?

2024년 철거가 확정된 것은 공중보행교(데크 연결부)이며, 세운상가 건물 자체의 존치·철거 여부는 별도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구역별로 다르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신 진행 상황은 서울시 발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세운상가 건물군과 공중보행교를 함께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가 건물과 연결 보행교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그림은 실제 현황을 기록한 사진이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세운상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도로 위에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데크를 얹어 인공 지반을 만들려 했지만, 시공 주체가 쪼개지며 한 번, 실제 이용 패턴을 놓치며 또 한 번 — 구조는 서 있었지만 도시적 구상은 두 차례 무너진 메가스트럭처입니다.
공식 자료 및 확인일

위키백과 '세운상가'
https://ko.wikipedia.org/wiki/세운상가

경향신문 '1109억원 들인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결국 철거 수순'
https://www.khan.co.kr/article/202409121115011

서울정책아카이브 Seoul Solution '세운상가 조성계획'
https://seoulsolution.kr/ko/content/세운상가-조성계획-세운상가-건립과-재생

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24일

이미지 출처

썸네일과 본문 이미지는 모두 생성형 AI로 제작한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실제 세운상가의 형태·재료·세부 모습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현황 기록사진이나 공식 도면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건물군과 보행데크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도로와 보행데크를 서로 다른 높이에 배치한 세운상가의 구상을 보여줍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MEGASTRUCTURE OF SEOUL

도로 위에 도시를 얹은 세운상가, 왜 두 번 좌절했나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도심의 메가스트럭처를
구조·재료·시공의 시선으로 읽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청계천을 가로질러 약 1km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군이 있습니다. 세운상가입니다. 1967년 준공 당시 이 건물은 지상의 차도와 3층의 보행로를 완전히 분리하고, 그 위에 상가·주거·공공시설이 얹힌 하나의 "인공 도시"를 꿈꿨습니다.

이 구상은 준공 때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크게 좌절했습니다. 1970년대 8개 건설사가 각자 건물을 지으며 애초의 연속된 데크가 토막났고, 2024년에는 1,109억 원을 들여 복원한 공중보행교마저 철거가 확정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얹는다"는 구조적 발상이 어떻게 성립했고, 왜 두 번이나 현실에서 무너졌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내용 세운상가가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로 지어졌는지, 3층 데크가 구조적으로 도로 위를 어떻게 덮었는지, 왜 애초 계획대로 하나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2017년 재생사업이 무엇을 다시 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 그 보행교가 왜 다시 철거되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였나

서울 도심에 길게 놓인 세운상가 건물군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상가 건물군이 주변 시가지와 맞닿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선 부지 자체가 이미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소이탄 공습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폭 50m·길이 1,180m 구간의 건물을 강제 철거해 만든 소개공지(疏開空地)가 그 자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빈 띠 모양의 부지는 무허가 판자촌으로 채워졌다가,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개발 계획과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를 통해 세운상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김수근의 구상은 단순한 상가 건물이 아니라, 지상 1층은 차도·주차장으로, 3층에는 사람만 다니는 인공 데크를 놓아 보행자와 자동차를 완전히 분리한 "선형 메가스트럭처"였습니다. 점포 2천여 개와 주거 915세대를 수용하는 이 건물은 1971년 한강맨션이 들어서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첨단 주상복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위치 서울 종로구~중구, 종묘~퇴계로 약 1km 구간
설계 김수근 (실무 설계 윤승중 등)
준공 1967~1972년 (현대상가 1967년 7월 최초 준공)
구성 현대·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상가 등 8개 건물군 (2009년 현대상가 철거, 현재 7개 동)
주요 자재 시멘트 약 87만 부대, 철근 약 7천 톤, 목재 143만 사이
구조 철근콘크리트, 1층 차도 위 3층 인공 보행 데크
재생사업 2014~2017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2022~2023년 공중보행교 복원

2. 데크는 어떻게 도로 위를 덮었나 — 건폐율 100%의 구조

세운상가 보행데크와 그 아래 상가 공간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부 보행 공간과 지상 통행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정확한 구조 형식을 보여주는 도면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의 구조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건물 상층부 바닥판이 실제 대지 경계보다 넓게 뻗어 나와, 양옆 도로 위까지 그대로 덮고 있는 동이 존재합니다. 건축 법규상 대지면적 대비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건폐율)이 100%를 넘는 셈입니다. 이는 건물이 단순히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상공에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을 캔틸레버(한쪽만 지지된 채 뻗은 구조) 형태로 걸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캔틸레버 데크가 구조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은 위층 점포·주거의 하중뿐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얹으면서도 그 아래 도로 기능은 막지 않아야 하는 이중 조건을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구조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만 이 데크에는 애초 계획했던 유리 지붕과 옥상 정원이 끝내 시공되지 않아, 지금의 다소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으로 남았습니다.

3. 왜 "한 줄"이 되지 못했나 — 8개 건물군과 끊어진 데크

반복되는 상가와 상부 보행로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건물군 안에서 상가와 보행로가 반복되는 공간감을 표현했습니다. 각 동의 실제 연결 상태를 기록한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수근의 원래 구상은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하나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3층 보행 데크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공은 서로 다른 8개 건설사가 구간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설계자 윤승중은 훗날 "8개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결과 각 동의 3층 데크는 높이와 폭이 미세하게 어긋난 채 개별적으로 지어졌고,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이어졌다가 마른내길 구간에서 완전히 끊기는 등 연속성을 잃었습니다. 구조적으로 개별 건물은 문제없이 서 있었지만, 애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연속된 인공 지반"이라는 도시적 구조는 성립하지 못한 셈입니다. 시공 조직이 여러 주체로 쪼개지면 개별 구조물은 완성되어도 전체 시스템은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2017년, 데크를 다시 잇다

세운상가의 상부 보행로와 서울 도심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공중보행로에서는 지상의 길과 다른 높이에서 주변 시가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입주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해, 1987년 용산전자상가 조성과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거치며 쇠퇴가 깊어졌습니다. 1995년 서울시는 전면 철거·공원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고, 2008년 오세훈 시장 때 현대상가 동만 철거된 채 금융위기로 중단됐습니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전면 철거 대신 "보존형 개발"을 택하고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끊어졌던 3층 데크, 즉 공중보행교를 국제공모를 거쳐 다시 설계해 잇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 9월 세운상가 리모델링이 먼저 재개장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돼 2022~2023년 세운~청계~대림~인현~진양상가를 잇는 보행교가 완성됐습니다. 총사업비는 1,109억 원에 달했습니다.

5. 2024년, 다시 철거로 — 보행교는 왜 실패했나

상가 사이의 보행데크와 주변 건물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보행교를 평가할 때는 위쪽 통행뿐 아니라 아래쪽 거리의 빛과 보행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공된 지 2년 만인 2024년, 서울시는 이 공중보행교의 철거를 확정했습니다. 원인은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실제 이용 실적이었습니다. 설계 당시 하루 10만 5,440건의 통행이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그 11%인 1만 1,731건에 그쳤습니다. 철거가 결정된 삼풍상가~PJ호텔 구간은 예측치의 6.7%만 쓰였습니다.

여기에 데크 하층부가 햇빛을 가려 지상부가 어두워지고, 누수와 지상 보도 폭 축소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보행교 설치 이후 지상부 보행량은 설치 전보다 59%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멀쩡히 서 있는 다리가, 주변부 환경과 실제 이용 패턴을 계산에 넣지 않은 탓에 철거 대상이 된 것입니다. 남은 구간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상가군을 공원으로 바꾸는 사업과 맞물려 단계적으로 철거될 예정입니다.

1967년
현대상가 최초 준공
1995년
전면 철거·공원화 발표
2014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시작
2022~23년
공중보행교 완성
2024년
보행교 철거 확정

세운상가와 공중보행교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세운상가는 왜 건폐율 100%를 넘는 구조가 가능했나요?

건물 상층부 바닥판을 도로 위까지 캔틸레버로 내밀어 지은 특수한 시기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준의 일반적인 건축 법규로는 허가되기 어려운 형태로, 1960년대 서울의 특수한 개발 방식이 남긴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Q2. 나카긴 캡슐타워와 비슷한 시대의 건물인가요?

네, 둘 다 1960년대 후반 "메가스트럭처"라는 세계적 건축 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나카긴이 교체 가능한 캡슐 개념이었다면, 세운상가는 도로 위에 연속된 인공 지반(데크)을 놓아 도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처럼 엮으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Q3. 그러면 세운상가 건물 자체도 철거되나요?

2024년 철거가 확정된 것은 공중보행교(데크 연결부)이며, 세운상가 건물 자체의 존치·철거 여부는 별도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구역별로 다르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신 진행 상황은 서울시 발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세운상가 건물군과 공중보행교를 함께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가 건물과 연결 보행교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그림은 실제 현황을 기록한 사진이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세운상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도로 위에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데크를 얹어 인공 지반을 만들려 했지만, 시공 주체가 쪼개지며 한 번, 실제 이용 패턴을 놓치며 또 한 번 — 구조는 서 있었지만 도시적 구상은 두 차례 무너진 메가스트럭처입니다.
공식 자료 및 확인일

위키백과 '세운상가'
https://ko.wikipedia.org/wiki/세운상가

경향신문 '1109억원 들인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결국 철거 수순'
https://www.khan.co.kr/article/202409121115011

서울정책아카이브 Seoul Solution '세운상가 조성계획'
https://seoulsolution.kr/ko/content/세운상가-조성계획-세운상가-건립과-재생

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24일

이미지 출처

썸네일과 본문 이미지는 모두 생성형 AI로 제작한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실제 세운상가의 형태·재료·세부 모습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현황 기록사진이나 공식 도면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도로 위에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데크를 얹어 인공 지반을 만들려 했지만, 시공 주체가 쪼개지며 한 번, 실제 이용 패턴을 놓치며 또 한 번 — 구조는 서 있었지만 도시적 구상은 두 차례 무너진 메가스트럭처입니다.
공식 자료 및 확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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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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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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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건물군과 공중보행교를 함께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가 건물과 연결 보행교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그림은 실제 현황을 기록한 사진이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세운상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도로 위에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데크를 얹어 인공 지반을 만들려 했지만, 시공 주체가 쪼개지며 한 번, 실제 이용 패턴을 놓치며 또 한 번 — 구조는 서 있었지만 도시적 구상은 두 차례 무너진 메가스트럭처입니다.
공식 자료 및 확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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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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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24일

이미지 출처

썸네일과 본문 이미지는 모두 생성형 AI로 제작한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실제 세운상가의 형태·재료·세부 모습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현황 기록사진이나 공식 도면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운상가 건물군과 공중보행교를 함께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가 건물과 연결 보행교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그림은 실제 현황을 기록한 사진이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세운상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도로 위에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데크를 얹어 인공 지반을 만들려 했지만, 시공 주체가 쪼개지며 한 번, 실제 이용 패턴을 놓치며 또 한 번 — 구조는 서 있었지만 도시적 구상은 두 차례 무너진 메가스트럭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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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109억원 들인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결국 철거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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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과 본문 이미지는 모두 생성형 AI로 제작한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실제 세운상가의 형태·재료·세부 모습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현황 기록사진이나 공식 도면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건물군과 보행데크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도로와 보행데크를 서로 다른 높이에 배치한 세운상가의 구상을 보여줍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MEGASTRUCTURE OF SEOUL

도로 위에 도시를 얹은 세운상가, 왜 두 번 좌절했나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도심의 메가스트럭처를
구조·재료·시공의 시선으로 읽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청계천을 가로질러 약 1km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군이 있습니다. 세운상가입니다. 1967년 준공 당시 이 건물은 지상의 차도와 3층의 보행로를 완전히 분리하고, 그 위에 상가·주거·공공시설이 얹힌 하나의 "인공 도시"를 꿈꿨습니다.

이 구상은 준공 때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크게 좌절했습니다. 1970년대 8개 건설사가 각자 건물을 지으며 애초의 연속된 데크가 토막났고, 2024년에는 1,109억 원을 들여 복원한 공중보행교마저 철거가 확정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얹는다"는 구조적 발상이 어떻게 성립했고, 왜 두 번이나 현실에서 무너졌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내용 세운상가가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로 지어졌는지, 3층 데크가 구조적으로 도로 위를 어떻게 덮었는지, 왜 애초 계획대로 하나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2017년 재생사업이 무엇을 다시 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 그 보행교가 왜 다시 철거되는지 차례로 살펴봅니다.

1. 왜 이 자리에, 이런 형태였나

서울 도심에 길게 놓인 세운상가 건물군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상가 건물군이 주변 시가지와 맞닿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선 부지 자체가 이미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소이탄 공습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폭 50m·길이 1,180m 구간의 건물을 강제 철거해 만든 소개공지(疏開空地)가 그 자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빈 띠 모양의 부지는 무허가 판자촌으로 채워졌다가,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개발 계획과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를 통해 세운상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김수근의 구상은 단순한 상가 건물이 아니라, 지상 1층은 차도·주차장으로, 3층에는 사람만 다니는 인공 데크를 놓아 보행자와 자동차를 완전히 분리한 "선형 메가스트럭처"였습니다. 점포 2천여 개와 주거 915세대를 수용하는 이 건물은 1971년 한강맨션이 들어서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첨단 주상복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위치 서울 종로구~중구, 종묘~퇴계로 약 1km 구간
설계 김수근 (실무 설계 윤승중 등)
준공 1967~1972년 (현대상가 1967년 7월 최초 준공)
구성 현대·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상가 등 8개 건물군 (2009년 현대상가 철거, 현재 7개 동)
주요 자재 시멘트 약 87만 부대, 철근 약 7천 톤, 목재 143만 사이
구조 철근콘크리트, 1층 차도 위 3층 인공 보행 데크
재생사업 2014~2017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2022~2023년 공중보행교 복원

2. 데크는 어떻게 도로 위를 덮었나 — 건폐율 100%의 구조

세운상가 보행데크와 그 아래 상가 공간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부 보행 공간과 지상 통행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정확한 구조 형식을 보여주는 도면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의 구조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건물 상층부 바닥판이 실제 대지 경계보다 넓게 뻗어 나와, 양옆 도로 위까지 그대로 덮고 있는 동이 존재합니다. 건축 법규상 대지면적 대비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건폐율)이 100%를 넘는 셈입니다. 이는 건물이 단순히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상공에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을 캔틸레버(한쪽만 지지된 채 뻗은 구조) 형태로 걸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캔틸레버 데크가 구조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은 위층 점포·주거의 하중뿐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얹으면서도 그 아래 도로 기능은 막지 않아야 하는 이중 조건을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구조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만 이 데크에는 애초 계획했던 유리 지붕과 옥상 정원이 끝내 시공되지 않아, 지금의 다소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 외관으로 남았습니다.

3. 왜 "한 줄"이 되지 못했나 — 8개 건물군과 끊어진 데크

반복되는 상가와 상부 보행로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긴 건물군 안에서 상가와 보행로가 반복되는 공간감을 표현했습니다. 각 동의 실제 연결 상태를 기록한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수근의 원래 구상은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하나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3층 보행 데크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공은 서로 다른 8개 건설사가 구간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설계자 윤승중은 훗날 "8개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결과 각 동의 3층 데크는 높이와 폭이 미세하게 어긋난 채 개별적으로 지어졌고,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이어졌다가 마른내길 구간에서 완전히 끊기는 등 연속성을 잃었습니다. 구조적으로 개별 건물은 문제없이 서 있었지만, 애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연속된 인공 지반"이라는 도시적 구조는 성립하지 못한 셈입니다. 시공 조직이 여러 주체로 쪼개지면 개별 구조물은 완성되어도 전체 시스템은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2017년, 데크를 다시 잇다

세운상가의 상부 보행로와 서울 도심을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공중보행로에서는 지상의 길과 다른 높이에서 주변 시가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입주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해, 1987년 용산전자상가 조성과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거치며 쇠퇴가 깊어졌습니다. 1995년 서울시는 전면 철거·공원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고, 2008년 오세훈 시장 때 현대상가 동만 철거된 채 금융위기로 중단됐습니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전면 철거 대신 "보존형 개발"을 택하고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끊어졌던 3층 데크, 즉 공중보행교를 국제공모를 거쳐 다시 설계해 잇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 9월 세운상가 리모델링이 먼저 재개장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돼 2022~2023년 세운~청계~대림~인현~진양상가를 잇는 보행교가 완성됐습니다. 총사업비는 1,109억 원에 달했습니다.

5. 2024년, 다시 철거로 — 보행교는 왜 실패했나

상가 사이의 보행데크와 주변 건물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보행교를 평가할 때는 위쪽 통행뿐 아니라 아래쪽 거리의 빛과 보행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 실제 세운상가의 세부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공된 지 2년 만인 2024년, 서울시는 이 공중보행교의 철거를 확정했습니다. 원인은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실제 이용 실적이었습니다. 설계 당시 하루 10만 5,440건의 통행이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그 11%인 1만 1,731건에 그쳤습니다. 철거가 결정된 삼풍상가~PJ호텔 구간은 예측치의 6.7%만 쓰였습니다.

여기에 데크 하층부가 햇빛을 가려 지상부가 어두워지고, 누수와 지상 보도 폭 축소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보행교 설치 이후 지상부 보행량은 설치 전보다 59%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멀쩡히 서 있는 다리가, 주변부 환경과 실제 이용 패턴을 계산에 넣지 않은 탓에 철거 대상이 된 것입니다. 남은 구간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상가군을 공원으로 바꾸는 사업과 맞물려 단계적으로 철거될 예정입니다.

1967년
현대상가 최초 준공
1995년
전면 철거·공원화 발표
2014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시작
2022~23년
공중보행교 완성
2024년
보행교 철거 확정

세운상가와 공중보행교의 관계를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자주 묻는 질문

Q1. 세운상가는 왜 건폐율 100%를 넘는 구조가 가능했나요?

건물 상층부 바닥판을 도로 위까지 캔틸레버로 내밀어 지은 특수한 시기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준의 일반적인 건축 법규로는 허가되기 어려운 형태로, 1960년대 서울의 특수한 개발 방식이 남긴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Q2. 나카긴 캡슐타워와 비슷한 시대의 건물인가요?

네, 둘 다 1960년대 후반 "메가스트럭처"라는 세계적 건축 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나카긴이 교체 가능한 캡슐 개념이었다면, 세운상가는 도로 위에 연속된 인공 지반(데크)을 놓아 도시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처럼 엮으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Q3. 그러면 세운상가 건물 자체도 철거되나요?

2024년 철거가 확정된 것은 공중보행교(데크 연결부)이며, 세운상가 건물 자체의 존치·철거 여부는 별도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구역별로 다르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신 진행 상황은 서울시 발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세운상가 건물군과 공중보행교를 함께 표현한 설명용 이미지
상가 건물과 연결 보행교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그림은 실제 현황을 기록한 사진이 아닙니다. 출처: AI 생성 설명용 이미지

세운상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도로 위에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데크를 얹어 인공 지반을 만들려 했지만, 시공 주체가 쪼개지며 한 번, 실제 이용 패턴을 놓치며 또 한 번 — 구조는 서 있었지만 도시적 구상은 두 차례 무너진 메가스트럭처입니다.
공식 자료 및 확인일

위키백과 '세운상가'
https://ko.wikipedia.org/wiki/세운상가

경향신문 '1109억원 들인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결국 철거 수순'
https://www.khan.co.kr/article/202409121115011

서울정책아카이브 Seoul Solution '세운상가 조성계획'
https://seoulsolution.kr/ko/content/세운상가-조성계획-세운상가-건립과-재생

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24일

이미지 출처

썸네일과 본문 이미지는 모두 생성형 AI로 제작한 설명용 이미지입니다. 실제 세운상가의 형태·재료·세부 모습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현황 기록사진이나 공식 도면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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