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젠 토루|다진 흙으로 둥근 공동주택을 지은 이유
| ‘네 가지 반찬과 국 한 그릇’이라 불리는 전라갱 토루군으로, 원형·타원형·사각형 흙집 다섯 채가 산비탈에 모여 있습니다. |
CHINA · FUJIAN · TULOU
다진 흙으로 둥근 공동주택을 지은 이유
중국 푸젠성 남서부 산골짜기에는 거대한 도넛처럼 생긴 흙집이 있습니다. 바깥은 창이 거의 없는 두꺼운 흙벽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짠 방 수백 칸이 둥근 마당을 빙 둘러싸고 있습니다. 한 집안, 많게는 수백 명이 한 건물에서 살았던 ‘토루(土樓)’입니다. 왜 흙을 다져 벽을 쌓았고, 왜 둥글게 지었는지 구조와 생활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에서 확인할 내용
- 토루는 누가, 언제, 왜 지었나 (역사 연표)
- 흙을 다져 벽을 쌓는 판축 공법과 둥근 평면의 장점
- 엔지니어 시각: 흙벽이 수백 년을 버티는 원리 (단면 개념도)
- 문은 하나, 창은 위층에만 둔 방어 구조와 씨족 공동생활
1. 토루는 누가, 왜 지었을까
| 객가인들이 산간 지대에 지은 토루 마을 풍경으로, 흙벽 건물이 계곡 사이에 모여 있습니다. |
토루는 흙을 다져 쌓은 벽이 무게를 받치는 대형 공동주택입니다. 주로 객가(客家, 하카)인이 지었고, 푸젠성 남동부에서는 민남(閩南)인이 지은 토루도 있습니다. 객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러 차례 옮겨 와 산간 지대에 자리 잡은 한족 집단입니다. 낯선 땅에서 도적과 분쟁을 막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한 씨족 전체를 한 건물 안에 모으는 방식을 택한 것이 토루의 출발점입니다.
유네스코는 2008년 푸젠성 남서부 약 120km에 흩어진 토루 46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등재 구역은 초계·홍갱·고북·전라갱·하갱 토루군 등 10곳입니다. 유네스코는 토루를 “방어 조직과 공동생활 방식을 보여 주는 건축 전통의 뛰어난 사례”로 평가하며, 한 건물에 최대 약 800명까지 살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 푸젠 토루 역사 한눈에 보기
| 시기 | 내용 | 근거 |
|---|---|---|
| 12~20세기 | 도적이 잦던 남중국 산간에서 방어형 흙집이 발달 (유네스코는 등재 토루의 건립 시기를 15~20세기로 설명) | 위키백과 / 유네스코 |
| 1308년(원) | 남정현 유창루(裕昌樓)가 이때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짐. 5층, 가장 오래된 토루 중 하나로 꼽히지만 연대에는 이견이 있음 | 위키백과 |
| 1371년(명) | 화안현 타원형 토루 제운루(齊雲樓),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토루로 꼽힘 | 위키백과 |
| 1419년 | 초계 토루군 집경루(集慶樓) 건립. 두 겹 고리 구조, 바깥 고리 4층 | 위키백과 |
| 1573년 | 명나라 기록에 ‘토루’라는 말이 처음 등장 | 위키백과 |
| 1709년(청) | ‘토루의 왕’ 승계루(承啓樓) 완공. 지름 약 62.6m, 네 겹 고리, 바깥 고리 4층, 방 약 370~400칸 (자료마다 다름) | 위키백과 외 |
| 1912년 | ‘토루의 왕자’ 진성루(振成樓) 건립. 두 겹 고리, 바깥 4층 | 위키백과 |
| 1957·1980년 | 1957년 첫 학술 연구 발표. 1980년 『중국고대건축사』에 승계루가 실리며 국제적 관심이 커짐 | 위키백과 |
| 2008년 | ‘푸젠 토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46채, 10개 구역, 기준 iii·iv·v) | 유네스코 |
※ 가장 오래된 토루가 무엇인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유창루의 1308년 건립설은 전승에 가깝고,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이른 사례는 1371년 제운루로 보는 설명이 많습니다.
2. 흙을 다져 벽을 쌓는 법, 그리고 둥근 모양
| 1709년 완공된 승계루입니다. 다진 흙으로 쌓은 둥근 바깥벽 위에 기와지붕과 깊은 처마가 얹혀 있습니다. |
토루의 벽은 흙벽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판축(版築), 곧 흙을 다져서 만든 벽입니다. 나무 판으로 거푸집을 세우고 그 안에 흙을 부은 뒤 공이로 단단하게 다지고, 한 켜가 굳으면 거푸집을 위로 옮겨 다시 다집니다. 흙에는 돌, 대나무, 나무 등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섞었고, 벽 안에는 대나무 가지와 나무 띠를 가로로 넣어 보강했습니다. 찹쌀 풀 같은 재료를 섞어 접착력을 높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 무너진 토루에서는 흙을 한 켜씩 다져 올린 판축 벽의 층과 두께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
무너진 토루를 보면 벽이 켜켜이 쌓인 층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벽 아래쪽 1~2m는 흙 대신 다듬은 돌이나 강자갈을 석회·모래·점토 반죽으로 붙여 쌓았습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고, 적이 벽 밑을 파고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벽 두께는 아래쪽이 약 2m, 위로 갈수록 얇아져 꼭대기는 약 1m 정도입니다.
둥근 모양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원은 같은 길이의 벽으로 가장 넓은 면적을 감쌀 수 있어 흙과 품이 덜 듭니다. 모서리가 없으니 구석에 어둡고 쓰기 불편한 방이 생기지 않고, 방을 거의 같은 크기로 나눌 수 있어 여러 가구가 공평하게 나누기에도 좋습니다. 또 바람이나 흔들림이 어느 한 모서리에 몰리지 않고 벽 전체로 나뉜다고 설명됩니다. 다만 토루가 모두 둥근 것은 아닙니다. 사각형, 타원형, 오각형 토루도 있고, 둥근 모양만 두고 설명하는 것은 일부의 이야기입니다.
3. 엔지니어 시각 — 흙벽이 수백 년을 버티는 원리
| 토루를 바깥에서 안마당까지 잘라 층별 쓰임과 구조를 표시하고, 가구별 세로 분할을 평면으로 함께 보여 주는 자체 제작 개념도입니다. 실측 도면이 아닙니다. |
위 그림은 원형 토루를 바깥에서 안마당까지 반으로 잘라 본 개념도이며, 특정 토루의 실측 단면이 아닙니다. 공개된 공식 실측 단면도를 찾지 못해 공개 자료의 구조 설명을 바탕으로 직접 그렸습니다.
🔧 구조를 뜯어보면
- 흙벽이 기둥 역할: 토루는 바깥 흙벽이 지붕과 바닥의 무게를 직접 받는 내력벽 구조입니다. 안쪽 목조 골조는 보를 흙벽에 꽂아 층마다 바닥과 회랑을 받칩니다.
- 아래가 두껍고 위가 얇은 벽: 아래쪽 약 2m에서 위쪽 약 1m로 얇아지는 벽은 무게 중심을 낮춥니다. 벽을 안쪽으로 살짝 기울게 쌓아, 무게가 벽을 서로 눌러 붙이는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했다고 설명됩니다.
- 둥근 벽 = 스스로 버티는 고리: 원형 벽은 한 곳에 가해진 힘을 고리 전체로 나눕니다. 모서리가 없어 균열이 한 점에 몰리기 쉬운 약점도 줄어듭니다.
- 흙의 약점은 물: 흙벽은 물에 젖으면 약해집니다. 그래서 아래는 돌 기단으로 습기를 막고, 위는 멀리 뻗은 깊은 처마로 빗물이 벽에 닿지 않게 했습니다. 기단 둘레에는 물을 빼는 배수로도 둡니다.
- 두꺼운 흙의 열 성능: 두꺼운 흙벽은 열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내보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4. 문은 하나, 창은 위층에만
| 토루를 바깥에서 안마당까지 잘라 층별 쓰임과 구조를 표시하고, 가구별 세로 분할을 평면으로 함께 보여 주는 자체 제작 개념도입니다. 실측 도면이 아닙니다. |
토루의 바깥은 거의 요새에 가깝습니다. 출입구는 대개 하나뿐이고, 두께 10cm가 넘는 나무 문에 철판을 덧대고 문틀은 통째로 된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었습니다. 문 위에 물탱크를 두어 적이 문에 불을 지르면 물을 흘려 끌 수 있게 한 토루도 있습니다.
1층과 2층 바깥벽에는 창이 없고, 창은 3층 이상에만 작게 냈습니다. 맨 위층에는 밖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두었습니다. 문을 닫으면 건물 전체가 하나의 성처럼 닫히지만, 안에는 우물과 곡식 창고가 있어 한동안 바깥의 도움 없이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5. 안으로 들어가면 — 씨족이 함께 사는 둥근 마을
| 토루의 출입구는 대개 하나뿐입니다. 문을 닫으면 건물 전체가 성처럼 닫힙니다. |
바깥이 닫혀 있는 만큼 안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모든 방은 안마당을 향해 문과 창을 내고, 층마다 안쪽으로 빙 둘러 나무 회랑이 이어집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나 공용 건물이 있고, 우물도 보통 2~3개 둡니다. 유네스코가 토루를 ‘한 가족의 작은 왕국’, ‘북적이는 작은 도시’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 층마다 안쪽으로 빙 둘러 이어진 나무 회랑입니다. 흙벽에 꽂은 보가 회랑과 바닥을 받칩니다. |
방을 나누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한 가구가 한 층을 쓰는 것이 아니라,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세로로 한 줄을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층은 부엌과 식당, 2층은 곡식 창고, 3층 이상은 침실로 쓰는 식입니다. 가구마다 층마다 2~3칸을 쓰는 구성이 일반적이었고, 이렇게 하면 모든 가구가 부엌, 창고, 침실을 똑같이 나눠 가질 수 있습니다. 층별 쓰임은 토루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6. 둥근 것만 토루는 아니다 — 그리고 지금
| 토루가 모두 둥근 것은 아닙니다. 사각형 토루도 두꺼운 흙벽과 하나뿐인 문, 안마당을 향한 방이라는 원리는 같습니다. |
토루 하면 둥근 모양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각형 토루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남정현 전라갱 토루군은 가운데 사각형 토루 하나를 둥근 토루 셋과 타원형 토루 하나가 둘러싸고 있어 ‘네 가지 반찬과 국 한 그릇(四菜一湯)’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모양은 달라도 두꺼운 흙벽, 하나뿐인 문, 안마당을 향한 방이라는 원리는 같습니다.
둥근 지붕이 모여 있는 모습 때문에, 냉전 시기 미국이 위성사진을 보고 미사일 기지로 오인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공식 문서는 확인되지 않아 속설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오늘날 토루의 더 현실적인 과제는 관광입니다. 유네스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관광과 주변 농경·산림 경관의 관리 문제를 보존 과제로 짚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도시로 떠나면서 빈 방이 늘고, 일부 토루는 숙소나 상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흙으로 지은 벽이 정말 수백 년을 버티나요?
흙을 강하게 다지고 대나무·나무 띠로 보강한 데다, 돌 기단과 깊은 처마로 물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흙벽은 물에 젖지만 않으면 매우 단단합니다. 반대로 지붕 관리가 끊기면 빗물 때문에 빠르게 무너지는데, 무너진 토루들이 그 사례입니다.
Q2. 토루는 모두 둥근가요?
아닙니다. 원형 외에도 사각형, 타원형, 오각형 토루가 있고, 안에 고리를 한 겹 더 두른 토루도 있습니다. 전라갱 토루군처럼 여러 모양이 한 마을에 섞여 있는 곳도 있습니다.
Q3. 지금도 사람이 사나요?
일부 토루에는 여전히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인구가 줄고 관광객이 늘면서 빈 방이 많아졌고, 일부는 숙소나 기념품 가게로 쓰입니다. 방문할 때는 생활 공간을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줄 정리
“푸젠 토루는 다진 흙벽으로 바깥을 닫고 안마당으로 삶을 열어,
한 씨족을 한 지붕 아래 지켜 낸 둥근 마을입니다.”
공식 자료 및 확인일
※ 단면 개념도는 공식 실측도면이 아닌 자체 제작 그림입니다. · 자료 확인일: 2026년 9월 23일
썸네일: Scott Edmunds, Wikimedia Commons, File:Three round, one oval, one square (16831811084).jpg (CC BY 2.0)
이미지 1: Motohiro Sunouchi, Wikimedia Commons, File:Tianluokeng Tulou cluster DSC5262 (16013367958).jpg (CC BY 2.0)
이미지 2: 张元柏, Wikimedia Commons, File:2012 永定、南靖 土楼 承启楼 - panoramio.jpg (CC BY-SA 3.0)
이미지 3: Vmenkov, Wikimedia Commons, File:Yi'anbao - ruined tulou - P1260340.JPG (CC BY-SA 3.0)
이미지 4: Vmenkov, Wikimedia Commons, File:Chengqi Lou - inside - main gateway - DSCF3236.JPG (CC BY-SA 3.0)
이미지 5: 张元柏, Wikimedia Commons, File:2012 永定、南靖 土楼 承启楼内部 - panoramio.jpg (CC BY-SA 3.0)
이미지 6: Vmenkov, Wikimedia Commons, File:Chengqi Lou - inside - walkway - DSCF3200.JPG (CC BY-SA 3.0)
이미지 7: 자체 제작 개념도
이미지 8: Vmenkov, Wikimedia Commons, File:Qujiang - square tulou - DSCF3088.JPG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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